
변명20
무던함에 대해서
어떠한 변명조차 하지 않는 거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단 한 번의 흐름만으로 이익을 계산하는 거지. 오차범위는 생각보다 크지만 당시에는 신경쓰지않는다. 24살이라는 나이는 누군가에게는 젊고 누군가에게는 많은 것이겠으나,, 본인에게만큼은 '현저히' 젊은, 혹은 어린 나이니까.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돌리기는 쉽다. 단 한 번의 생각. 그 생각에는 배려, 수지타산, 이익, 이타심, 순애보, 이기심, 나르시시즘이 한 데 어울려야만 한다. 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렇구나'가 지배한다. 지배당한다는 표현은 옳지 못하다. 스스로 선택한 길임을 인지하고 있으니까. 하기 싫어서 고민하고, 인정하기 싫어서 부정하는 거다. 그게 눈에 보여서 인간이 우스운 거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나역시 인간에 속하고 있어서 그게 참 비탄스럽다. 무던한 것은 무던히 노력해야지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하지 않는 자수성가형의 인간에게는 분노만 남아있다. 그 분노는 자격지심에서 도래된다. 노력하지 않음과 노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케바케, 사바사에는 숭고한 무던함이 숨어 있다. case by case, human by human. 그냥 그런거다. 그렇구나. 하고 알면된다.
생각보다 우리는 상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요구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파워는 상당히 강력한 것이어서,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인정받길 원하는 거다. 인간의 3대욕구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상대에게 많은것을 욕구, 욕망하는 거다. 그러니까, 인간은 인정이라는 말로 또다시 정립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인정받기
위하여. 우리는 상대를 먼저 인정하기도 하고, 인정받을만한 타당성을 상대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대가없이 인정받길 원하기도 할테고... 이 간단한 문장들이 현실에 접목되면 도의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할테지. 구멍 속 비치는 하늘은 사라지고 있는걸까. 아니면 하늘이 점차 번져나가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하늘은 그저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걸까. 그러니까 결론은 이거다. 모두가 무던해지길. 우리는 그 무엇하나 제대로 알 수 없는 지성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