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향F 2021. 3. 19. 02:24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실 나는 뼛 속까지 외로운 사람이어서, 그 사실을 인지하고 싶지 않아 외로움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끊어낸 인연들에 무관심하다만 미련을 갖는 아둔함을 지니고 있는 거지. 그랬더라면,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무수한 연결고리로 상상의 무대는 이미 수 천 편을 찍어냈다. 후회의 범주는 결국 자기착취로 돌아온다. 왜 그랬어. 그런 미련한 짓 좀 하지말란 말이야. 뼛 속까지 외로운 사람은, 타인 앞에서 옳고 그름을 잃는다. 그렇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냥, 그래야지만 다음 날을 맞이할 수 있다.
잊혀져 간다는 사실을 즐기면서도 불안해한다. 근본적인 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결국 나는 잊혀질 수 없는 존재이니까. 결국 살아감은 내가 아닌 가족일 뿐이다. 나는 살아간다. 가족이 있으니까. 부모님이, 엄마가. 없다면? 나는 무너져내릴까. 아니면 이 또한 담담히 마주하며 오히려 기뻐할까. 아. 드디어 나를 막을 건 없구나. 하고 잊혀짐을 마주할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과연 나에게 무기력에 반하는 무언가가 존재할 지 말이다.
외출과 만남, 대화와 교류가 역겨워지기 시작한 건 언제였지. 결국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 모든 타인에게서 얻어낸 결과부터였나. 나는 나를 단 한 번도 특별히 여긴 적 없는데 이것 또한 부정적 의미로의 특별함일 수도 있겠다.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부정적 특별 인식이 나로 하여금 꾸밈을 만들어낸다. 꾸민 모습과, 언행들은 어색하기 마련이다. 어색하지 않다면 가식적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하는가.
오늘은 타인과의 관계에대해 집중하려던 것은 아니다. 나는 관계 단절을 원했고 지금의 상태를 '살아오면서 여지껏 가장 행복하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다만, 기질의 변덕이 시작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회적 관계 유통망이 없을 때 타인을 그리워하면 어쩌지.
반복적인 나른한 나날들을 보내는데 정신없는 기분이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고 차츰차츰 해 나아가지만 근본적인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행복하지만 즐겁지 않다. 나에게 행복은 나태함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안간지 얼마나 되었지. 사람을 만난건. 뭐, 하지만 지금 나는 나가고싶지 않고 그 누구와도 만나고싶지 않다. 그저 즐겁지 않고 무기력할 뿐이다. 여려지는 허리가 그걸 증명한다. 누워 있거나, 불편한 의자에 앉아있거나. 밥을 먹거나, 씻거나, 뭐 그러고 산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일까? 아니 스토커라는 팬데믹 때문이다. 나에게 인간은 재앙이고 재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자연재해와 같다. 나는 결국 사회적인 인간에 속하기에, 인간과의 관계망을 유착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한테 있어서 인간은 팬데믹이고 재앙이고 재난이고 자연재해인 거다. 그냥, 그런 거다. 공존하며 잘 살아가는 것 같았는데 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돌연 변해버리는 것.
나는 죽고싶었던 적 없다. 내가 항상 원해왔던 건 소멸.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 소멸. 누구도에 속하는 건 타인 뿐 아니라 나 자신도 해당한다.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모두가.

반복적인 나른함과 정신없는 나날들 속에서
적은 시간 잠을 자더라도 단잠을 자길 바라는 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