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향F 2022. 3. 26. 19:00



변명25
연결성에 대하여


점철된 시간들을 사랑하겠노라 다짐했다. 사랑의 시선으로 점철된 핀을 뽑아 조정하는 순간을 바라고 또 바라야겠지. 널브러진 핀들에는 규칙성이 없어 값은 쌓이기 어렵다. 쉬움과 어려움, 깊음과 얕음. 대비되는 언어 사이의 불규칙성처럼 말이다.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단어는 단어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단어는 감정들의 부산물이겠지. 이해받기 위해 택한 수단. 우리는 정말로 대화를 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개와의 눈맞춤이 진실된 대화일 수도 있겠다. 언어에 대해 생각한다. 단어의 대화는 위험요소가 많다. 소쉬르의 정의를 떠올리다 결국 돌아온다. 언어학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언어를 줄이는 연습을 해야만한다. 이 세상에는 핀들이 너무나도 많이 박혀 있으니까. 길을 잃는 것이 정상이겠지.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시간이 흐르며 박혀버리는 핀들에 대해서.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 박혀 온 핀들은 뽑아봤자 제 흔적을 남길텐데 말이다. 무수한 흔적들이 형태를 구성하고 핀에 연결된 실들이 동력이되겠지. 동력이 되어버린 실은 지금쯤 어떤 색을 띄고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싫어하는 것을 알아가고 행복하기 위해 사랑을 배우는 시간들은 그릇된 결정이었을까. 생각을 비운다. 시간에 생각을 채워봤자 핀은 제 멋대로 박혀버리니까. 점철된 시간들을 사랑해야지. 점철된 시간들의 핀을 뽑아 간직해야지. 그래 사실은 핀의 위치를 조정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안다. 여전히 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편하니까. 자취가 흐르는 길대로 핀이 박혔겠지만, 선택으로 박힌 핀은 아니니까.

핀이 박힌 자리를 훑어내려야겠다. 조금은 더 얕은 호흡으로. 보다 더 무던한 속도로. 돌을 던져도 이내 잔잔해지는 호수처럼. 던져진 돌조차 아무렇지않게 품어내는 호수처럼. 간혹 진부함이 명확성을 내어주고는 한다. 진부한 것이 좋다. 고전과 아날로그와 옛스러움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것을 따라가다보면 싫어하는 것에 도달하겠지. 그러한 연결성은 의도하지 않은 핀이다. 비유로의 호수는 진부하지만 돌을 품어내는 호수는 아름다우니까. 돌을 던진 이에게는 핀이 박히지 않기를 바란다. 아주 작은 연결조차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그렇게 잊혀지기를. 품어낸 것들을 돌봐주기에도 시간은 바쁘니까. 아주 조금씩 단단해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