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향F 2022. 3. 29. 23:58

 

무관심보다 악독한 것은 무시다. 어려서부터 무시에 익숙했던 나는 그 누구보다 무시에 예민한 아이가 되었다. 대화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을 향하는 무시 역시 불쾌했고, 상대방의 말 끝에 향하는 것이 내가 아닐지라도, 나와 대화한다는 것만으로도 무시가 주제가 되면 불쾌했다.

 

 

불쾌했다기보다는 두려웠다. 혹여, 내가 무언가를 잘못힌 것은 아닌지. 이제는 내가 싫어지는 것은 아닌지. 더는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하고 말이다.

 

 

순간 지나가는 표정과 눈빛을 읽는다. 특히나 무시와 가까울 수록, 나에게 향할 수록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남들은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어디서 위로하는척 속이기는, 네가 멍청해서 모르는 거야. 걔는 나를 싫어한다고. .

 

 

편이 되어주지 못하던 엄마와, 경멸하기 바빴던 언니. 나를 무시하는 동생. 너무나도 현실적인 우리 아빠. 우리 가족은 나에게 안식처가되지 못했다. 인정받아야하는 그 무언가, 구성원으로 포함되기 위해 나를 수없이도 바꿔야했던. 수없이 바꿔나가야 할 인정받아야 속할 수 있는 그들이다.

 

 

망가짐의 시작은 분노였다가 자책이었다가 무기력이라하였나. 나의 분노는 초등생 시절에 시작되었다. 일기장의 표지이는 파란 종이 테이프가 반듯하게 가로로 둘러싸고 있었다. 정갈하고 점차 헤져가던 그 일기장에는 낙서와, 수많은 욕설들이 담겨졌다. 씨발년 죽어버려! 제발 죽었으면!! 말을 왜 그딴식으로밖에 못하는데? 악필이었던 나는 악을 담아 연필을 눌러썼다. 그 일기장을 엄마가 발견한 날, 생각보다 우리의 대화는 짧았다. 기억하기로는 3~4마디씩 주고받았을 뿐이다.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나. 10년이 지난 지금 나의 꿈 속 엄마는 여전히 파란 일기장을 들고 있다.

 

 

아, 이제는 우울감마저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