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명7
그대들의 곁눈에 대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눈알을 굴려대는 그대들에게.
어찌해야 나의 어린 감정을 상대에게 어른스럽게 다가갈 지 고민한 적 있다면 그대는 충분히 아파본 사람일 것이다. 스스로의 아픔을 보다듬어 주지 못한다고 어린 것이 아닌, 보듬어주지 않는 상대를 탓하는 것이 어린 것일 테다. 나의 행복을 보듬음으로 판단하는 것이 어린 것일 테다.
당신은 여전히 어린 사람인가?
어미의 어린 발뒤꿈치를 위해 도톰한 양말을 사고, 튀어나온 아비의 배를 고려하지 않고 정 사이즈의 내복을 구매했을 때, 돌아오는 꾸지람을 받아낼 수 있는 그대들이 진정 어린 것이다. 여린 마음을 여린 채로 내버려둘 수 있는 그런 용기. 그대들의 용기에 대해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전한다. 남을 탓하면서도 탓하지 않음이 옳다는 것을 아는 그대들의 여린 감정을 응원한다. 솔직하게, 돌리지않고. 이미 세상에 돌고 있는 것들은 충분하니까.
우울은 어쩌면 서툰 위로다. 어린 아이가 건내주는 진흙과 꽃이 섞인 그런 소꿉놀이 속의 "밥"과 같은 상상 속 따뜻한 위로. 실상은 차갑기 그지없고 삼킬 수 조차 없어 감내하기 힘들지만 속 하나 만은 굉장히 따뜻한 그런 것 말이다. "모두가 나를 사랑했음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행복하기라도 했으면" 서툰 우울은 그렇게 말을 건넨다. 그대들은 모두 행복하기를. 돌고 있는 세상 속에서 멈출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곁에 남아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기를. 이기적인 우울함은 그래서 무서운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홀로 온 힘을 다해 그대들을 위로하고 있으니. 착각하기 쉬워서.
그대들의 곁눈이 잠시 멈출 수 있는 곳이 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참아낼 수 있을 터다. 수 백번의 호흡 속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나를 돌아봐준다면 말이다. 흔들리는 그대들의 곁눈이 나를 향하지는 말았으면. 싫어해도, 곁눈의 이유가 나로 인한 것이지만 않으면 행복했노라,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뼈가 아리게 그대들이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