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명10
안녕, 에 대해
어느날 홉스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타인의 결함을 보고 웃는 존재라는 말을요. 인간은 그저 자기 보존에만 신경을 쏟는 생명체라는 뜻이지요. 곧이어 나는 대체 언제 웃는 인간인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철학을 싫어하면서도 과거, 지식으로 우겨넣었던 철학들이 떠오를 때 웃는 저를 발견합니다. 어두운 공간에서도 수수히 웃는 횃불같은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제야, 아 나는 이런 인간이구나 깨닫습니다. 당신의 손 끝에는 옅은 흔적들이 많더군요. 지나간 가시들은 이미 당신을 잊었을 텐데. 소리내 말하며 나도 가시로 돌아서고싶었지만, 나를 위해 묵념합니다. 아무 말 없이 미소 짓습니다. 철학이 틀리지 않는 순간을 또 다시 맞이하며, "말뿐이구나." 하고 다시 자기최면을 겁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두운 곳에서 식어가는 인간들을 그립니다. 점차 땅과 가까워지는 사람들을 말이죠. 그 속에서도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런 인간들을 보며 저는 생각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말을 잊었으면- 하고요. 그 다음으로는 눈을 잃고, 손짓을 잃으며, 아우라가 사라지길 바랍니다. 아무런 흔적도 없는 그저 그런 곤약인간으로 남기를 바라요. 그래서 나를 미워한다 느껴지는 사람들은 곤약처럼 보입니다. 가끔 뜨거운 햇빛 아래서는 녹아내리곤 하더군요. 그대로 아스팔트에 흡수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순식간에 형체를 다잡습니다. 저는 다시 시선을 돌려 길을 걸어요. 그 길은 곤약이 한 번쯤 녹아내렸던 길이겠지요.
곤약들이 입을 열면 봉재 인형 연결 다리처럼 쩌억- 하고 벌어집니다. 무어라 말을 하는 지 끈적이는 소리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가끔, 그들은 웃으며 말을 걸기에 저도 웃으며 "맞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하고 답하곤 합니다. 뭐라 하는 지 모르겠어서 그냥 긍정을 꺼내요. 가끔은 그 곤약들이 제게 "나는 네가 싫어." 하고 말하기를 바랍니다. 그 말에 제가 뭣도 모르고 "맞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하고 답하는 상황을 상상해요. 알 수 없는 쾌감이 따라옵니다. 그들은 항상 저를 보며 웃으니까요. 어쩌면 홉스 세계 속의 진정한 인간들이 제 세상의 곤약인간들인가 봅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곤약인간이겠지요. 누군가에게는 이미 아스팔트 저 속에 쳐박힌 하나의 길에 지나지 않겠지요.
저는 글을 분석할 때 캐릭터 분석을 하지 못합니다. 대학 시절 비평을 써내렸을 때, 제 비평 속에는 상황에 대한 인간의 행동 분석만 즐비했었죠. 저는 인간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나를 미워한다 생각해도 곤약인간으로 남겨둘 뿐이지요. 인간에 대한 분석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사실은 증오스럽습니다. 보지 못하는 우울과 보는 우울의 차이가 원망스럽습니다. 당신들의 글에 녹아 있는 자아가 부럽습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인간이 되고자 합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거울을 보며 라이터를 켜고 언젠가, 나를 향해 인사할 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