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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º*º 쓰다 º*º*º/˚나의변명


변명22

인정에 대해서

'인정하다'라는 말은 주로 타인을 향한다. 감히 '나'가 타인을 인정하다니. 우습지않은가. 무수히 존재하는 많은 '나'들은 '나'조차도 모르면서 타인을 인정하느냔 말이다. 그렇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도 포함이다. '나'는 '나'를 인정해야한다. '나'가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꽤나 처절한 죄의식을 지녀야 할 터다. 당신은 이기적이고 욕망에 뒤틀려 있으며 이타적이고 계산적이면서 남을 동정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그런 하등의 감성을 지니고 있을 테다. 인간은 애초에 자기안녕을 바라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의 범위가 점차적으로 넓어질 뿐, 중심에는 그대 단 하나만 존재하고 있으리라.

첫 단계는 부정이다. 다음으로는 질타이고. 마지막은 결국 수긍일 터다. 욕심이 없는 인간이라고? 그렇다면 그대는 욕심없는 상태를 욕망하는 인간일 터다. 본디 인간은 그렇게 세상으로 엎질러졌다. "모순"이라는 키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인정"이라는 단어와 공생해야만 한다. 모순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좀 착해서 문제래." 라는 말 보다는 "나는 호의와 불의를 구분하지 못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가 더 깊은 웅덩이를 지녔다. 자학적인 것과 자기성찰적인 것은 동일 선상이다. 이 역시 모순 그 자체다. 자신의 추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성군의 덕목 중 하나라는 자아성찰의 일부일테니까.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갔음에도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지고 또다시 미워지고 돌아서고 그리워지고 돌아서고야 마는 그 젊은 영웅의 말처럼. '나'는 '나'를 혐오해야 돌아볼 수 있다. 그게 모순이라는 거다. 부정과 질타 그리고 그 끝에 순응. 모순에는 이러한 루틴이 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당신은 지금껏 당신의 추함을 '인정'한 적 있는가. 당신의 인정은 타인을 향했는가 자신을 향했는가. 어쩌면 당신은 타인을 인정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인정하고자 했을 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추한 외면 속에서 자신의 추한 내면과 마주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주고 타인을 배려해주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감동하면서도 결국은 자위밖에 되지 못함을 애써 부정해온 것. 어쩌면 그것이 당신의 '인정(人情)'이었겠지. 하지만 젊은 영웅은 말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자신의 추함을 인정(認定)하고나서야 인정(人情)을 베풀 수 있다.



*윤동주 <자화상>
**윤동주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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