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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º*º 쓰다 º*º*º/˚읽고쓰다

[TROUBLE(Prod. Slom) Don Mills, Northfacegawd, 소코도모, 카키, 에이체스 : 쇼미더머니 10] 가사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유튜브 흰토커

 

특히 국내 힙합을 들을 때 꽂히면 그 곡만 듣는다. 몇 개월 전에는 "궁금해"였고, 그 전에는 "아키라"였다. (넉살 팬이라 넉살 노래 위주) 하지만 쇼미철이 다가오면 쇼미 음원으로 플레이스트를 꽉꽉 채워 반복한다. 오늘도 다를 거 없었다. 이번에 나온 음원들을 모조리 들으며 카페 마감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수십번을 반복했는데, 어느 순간 귀에 꽂힌 가사가 있었다.

 

시끄러운 형광등 아래

 

참 많은 이야기거리를 가져오는 가사다. 훅이니까 자이언티가 썼을까. 모르겠다. 마감하던 것을 멈추고 가사를 검색해 가사를 읽고 또 읽었다. "시끄러운 형광등 아래" 이 얼마나 시적인 문장일까. 한 문장만으로도 상황이 그려진다면 그건 성공한 이미지 메이킹 문장이다. 새벽녘 끝을 보이지 않는 일거리 속에서 명멸하는 형광등은 얼마나 시끄러운지. 지금도 그렇다. 시끄러운 형광등을 잠재우기 전 조금이나마 글을 토해내려고 오랜만에 티스토리를 여는 내가 보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아 형광등! 좀 조용히 해."

 

그렇게 가사를 보고 있다가 한강을 떠올렸다. 소설 문장을 구사하는 내가 시가 아닌 곳에서 시적인 문장을 발견했을 때 주로 보이는 의식의 흐름이다. 그렇게 시와 소설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소설에서 '시끄러운 형광등 아래'라는 문장은 환영받지 못한다. 소설에서 형광등이 시끄럽다고 표현되기 위해서는 형광등 약이 다 해서 깜빡거리거나…아니면 상황 설정이 필요하다. '시끄러운 형광등'이라는 단어의 조합을 쓰기 위해서 소설 한 편을 써내려가야하는 것과 같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쓰는 소설의 시작도 이 문장을 위해서였다. "점차 여자의 경계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소통을 거부하고 사라짐을 선택한 여자. 소통을 거부하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는 부정적 결말이 아니다. 여자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뤄냈으니까. 하여튼, 저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원고지 70매라는 대단한 원정이 필요하다. 시적인 문장은 말그대로 시에서 사용되기에 시적인 문장인 거다. 소설의 소설적 문장은 앞뒤 맥락과 함께 주어진다. 앞뒤 자르고 그 문장만으로 아름다운 소설 속 문장이 있을까. 쌓이고 쌓여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거다. 그런 의미로 소설은 건축이고 수학이고 이과적이다. 

 

시와 소설에대해서 생각하다가 결국 장르와 순수에 대한 문제까지 도달했다. 최근 수업에서 "결말이 현실에서 끝나지 않는 건 결국 장르적 색체가 짙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장르소설로 취급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렇다. 글에 대해 무지한 (그러니까 문학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설명할 때 나는 뭐라 하더라. 나는 "문학 교과서 알죠? 거기에 있는 글. 그런거 써요." 그렇다면 '그런거'가 아닌 글이 장르인거다. 확실히 내 머릿 속에는 장르와 순수에 대한 구분이 뚜렷하다. 같은 "문학"은 맞지만 순수와 장르는 엄연히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교수님이 말했던 것처럼 결국 "현실"로 귀결되어야 한다. 

 

순수와 장르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순수는 조금 더 근원에 대해서, 장르는 조금 더 현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순수문학에서는 그 인간이 왜 그 장소에 도달했는지, 그 시간에 머무는지, 그 공간에 갔는지 "원인"에 집중한다면 장르는 인간이 어디로 갈 것인지, 어느 시간에 어느 인간과 함께하는지에 집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장르가 조금 더 미래지향적이라고 해야할까. 결국 현재라는 말이 미래라는 말과도 같으니까 말이다. 

 

그럼 근원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일까. 식물의 뿌리는 그저 땅에 처박혔을 뿐 과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뿌리에 과거가 담겼다. 뿌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씨앗일 적을 이야기해야하니까. 그런 거 라고 생각한다. 장르는 식물이 피워 낼 열매와 꽃을 순수는 식물이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이야기하는 거다. 

 

나는 정말 이런 이야기가 재미 있다.

놀랍게도, 이 모든 생각이 "시끄러운 형광등 아래"라는 가사 한 줄에서 파생되었다는 거.

사실 이것도 쓰다가 끝내는 거다.

할 일이 아직 쌓여 있으니까.

 

아무래도 오늘 형광등은 많이 시끄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