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당신의 침묵은 고요했는가.
수많은 양들 중 그 양을 골랐던 클라리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지. 어쩌면 그 양은 본인 자신이었을 수도 있겠다. 대문을 지키는 이 아무도 없지만 도망치지 않았던 자신. 누군가 자신을 꺼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람으로 끝난 이유는 그 끝이 결국은 종말에 달할 것임을 알았을 터다. 봄에 태어난 어린 양은 울부짖고 사람또한 울며 태어난다. 쏟아져나온다. 이 세상에 엎질러지고 ….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거지. 당신의 탄생은 어떠했나. 고요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죽음은 어떠할까. 고요할까. 어쩌면 태어남을 비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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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문을 열어주었지만, 도망치지 못한 양을 나무랄 자격 있는가. 그 양들은 그저 도망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들에겐 울타리가 세상이었다. 전부였다. 울타리 밖의 세상이 자유라는 것을 강요하는 것 또한 또다른 폭력 아닐까. 과연 양들은 울타리 밖을 원했을까. 어쩌면 봄에 태어난 어린 양을 도륙내는… 인간들을 지켜보는… 그런 삶을 온전히 영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평화였을테고. 그들 역시. 그 울타를 벗어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과연 울타리 밖에 있는 것은 누구일까. 문을 열었으니 클라리스일까. 아니, 어쩌면 울타리 밖에 있던 것은 양들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당연한 일상인. 그런 삶이 어쩌면 울타리 밖의 세상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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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증(이라고 착각하는) 연쇄살인마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성과 반대인 인간을 죽여 피부를 벗겨내 제봉하고 그것을 입는 살인자. 자신과 반대된 성별의 피부를 입은 그는 이제 남자인가 여자인가. 보이는 것이 전부인 건가. 내면을 들여다보아야하는 건가. 그러니까, 과연 울타리의 경계는 무슨 기준이느냔 말이다. 저가 직접 말뚝박아 세운 울타리일지라도 본인이 그곳에 갇히면 울타리 안인 거다. 그러니까…. 그 경계에 대한 기준말이다. 렉터 박사는 왜 계속 물을까. 탐욕에 대해.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질문과 단순성의 힘에 대해. 울타리를 세울 적을 떠올리라는 걸까. 그렇다면,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남이다. 어미의 자궁으로부터 쏟아져나오던 그 경이의 순간. 우리가 처음으로 소리내어 울었던 그 태초의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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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삶이고 울타리는 자궁이다. 여러 삶들 중 자궁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삶이다. 삶은 자궁 밖으로 벗어난다. 하지만 이것은 삶 자체의 자의가 아니다. 클라리스가 나를 꺼내왔다. 삶은 타의에 의해 이 세상에 엎질러졌다. 그렇게, 그런 삶을 영위하는 거다. 그 끝에는 죽음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양들은 이제 침묵했느냐는 렉터박사의 물음을 다시 말하자면,
과연 당신의 삶은 고요해졌는가 .
정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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