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피와 안식의 그 한끗에 대해, 장장 두 시간을 토론했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같이 도피를 했기에 안식이 찾아온 것인지, 안식하기 위해 도피를 시도해야하는 것인지. 글을 찾는 너와 나의 차이에 대해 장장 두 시간을 논했다.

무너진 손톱과 후회들에 대해 대신 울어주던 유일한 사람. 후회했기에 후회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음을 아는 그 사람이 어제 네 번 울었다. 나는 웃었고 울지마라 그를 위로했다. 그 뒤로 그는 몇 번 더 울었다. 더는 세지 않았다. 화를 내는 법을 배워가는 요즘, 아직 '운다' 에 대해 미숙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나의 말에 그는 웃으며, 화가 많아지면 눈물도 많아져. 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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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에 글을 싣는 것이 어렵다 느낀다. 글에 감정만 적고, 상황을 읊어만간다. 보여주기 어려워지고 설명만 할 줄 안다. 점점 글이 멀어져 감을 느끼는 것이 애탄하다. 그럼에도 책은 계속 읽는다. 죽기 전 탐스러운 감을 수 십개 맺어낸 우리집 마당의 감나무 처럼, 죽기 전 딱 한 번. 탐스러운 글을 싣고만 싶다. 그 시기는 대략 내가 죽기 직전, 최대한 많은 것을 느끼고 감당했을 때였으면 좋겠다.
나는 내 글로 사람들이 불행해졌음 한다. 우울에 대해 곱씹고, 그로 인해 자신을 알아가는. 한 단계 성장을 거치길 바라기에 최대한 내가 무너졌을 때 마지막 발버둥이 글로 나타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계속 책을 읽는다. 뭔가라도 나에게 남아 있어야 하니까.
그와 나와 같은 생각을 갖기를 바란다. 재미있더라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인한 재미이기를. 처참히 무너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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